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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돼지 밥 줄 무렵

입력
2015.04.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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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밥 줄 무렵”은 내가 태어난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돼지 아침밥 줄 무렵”이 맞다.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집에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태어난 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태어나자 누나와 둘째 형이 동네 하나뿐인 시계가 있는 이장님 댁으로 뛰어갔다 왔는데 그 시간이 7시 조금 넘었다고 하니 국민학교에도 못간 어린이들의 가는 시간 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대략 6시 30분쯤이 조금 못되지 않았을까 정도로 짐작할 따름이다. 어쨌든 우리 시골에서는 아침 일찍 돼지 밥 주고 일을 나가곤 했는데 그 무렵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웃음이 터졌는데, 구석에 앉으신 한 분이 나직이 말씀하셨다. “나는 기차소리 날 때야”라고 하시자 다들 어리둥절했다. 당신이 태어날 무렵 기차 기적소리가 났단다. 한밤 중에 태어났는데 시계는 당연히 없었고 마침 기차 기적소리가 났다는 말씀이다. 그곳은 충주 근방 두메산골로 중앙선의 지선이 다니다가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셨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왁자지껄 도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당시 철도 운행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니 운행기록만 확인하면 태어난 시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나이에 정확한 시를 알아 봐야 뭐하겠느냐는 당사자의 시큰둥한 반응에 재미는 반감되었지만 그날의 안주거리는 “돼지 밥 줄 무렵”과 “기차소리”였다.

국민학교 시절 학년마다 꼬박꼬박 낸 ‘가정환경조사서’에 언제나 집의 시계 개수 기록란이 있었다. 우리 집도 그랬지만 친구 집에도 시계는 1개 밖에 없었고 집에 시계가 1개 이상 더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 과외나 학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몰려다니던 뚝방 판자촌 어린이들에게 시계나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좁은 골목이지만 놀 거리는 많았고 시간은 넘쳐났기 때문이다.

빡빡머리에 까만 교복을 입어야 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한 반에 80명이 넘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는데 표독한 수학 선생 덕에 수학시간은 악마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일본 카시오사에서 나온 동그란 전자시계를 차고 온 부잣집 친구 녀석의 시계를 구경하는 수학선생의 얼굴에는 미소가 돌았고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이쪽저쪽으로 바꿔 차느라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른다. “그래, 1년에 1초 틀린다고?” 부러움에 가득한 눈으로 간지럽게 말하는 ‘그 자’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다. 도대체 1년에 1초를 왜 따지느냐고, 당신이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냐고, 1초가 아니라 몇 분이 틀려도 어떠냐고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고등학교는 교조적인 미션스쿨이라 보충수업이 아예 없었다. 고3이 되어도 중학생들 보다 일찍 귀가하니 시간은 풍족했다. 대학에서는 긴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시대의 아픔마저 없었다면 무척 지루한 시절이었으리라. 군대에 가니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돌아간다고 주변에서 그렇게 떠들어 댔건만 그 놈의 시간은 잘 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니 민간의 시간과 군대의 시간이 달랐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월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 돈 없어 대학 못 가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고. 그의 안색을 찬찬히 살피는 나의 눈이 예사롭지 않았나 보다. 대화를 돌리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때 말하고 싶었다. 숲을 함께 가도 벌목업자에겐 목재가, 시인에겐 아름다운 자연이, 곤충학자에겐 곤충이, 심마니에겐 약초가 보일 따름이라고 말이다. 이젠 유복해져서 지난날의 괴로움을 웃으며 회상하게 된 사람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어떤 이에게는 긴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순간이 되는 것처럼 기준이 달라지면 느껴지는 것도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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