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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 웃프다, 달관세대!

입력
2015.03.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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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향상욕망은 성장의 원동력

달관 아닌 불가피한 강제 출두 몰려

웃기는 슬픔 '웃픈'은 사회구조 탓

말은 시대를 녹여낸다.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치 않으면 재기발랄의 아이디어가 새로운 유행어를 만든다. 신조어다. 아쉽게도 요즘 신조어는 십중팔구 부정적이다. 삶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암울하고 짜증스럽다는 증거다. 한국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는 일자리와 관련된 신조어가 대표적이다. 첨예한 갈등과 묵직한 울분, 그리고 푸념의 자조가 단어곳곳에 가득하다. 행간에 감추려던 신중한 배려는 없다. 즉각·직설적이다. 하기야 그럴만한 동기도 여유도 없는 시대다.

달관세대란 말이 화제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한국에 수입될 때 ‘달관’이란 타이틀로 변했다. 원류는 ‘사토리(悟り)세대’다. 삶에 득도했다는 의미다. 지천명의 쉰은 돼야 어울림직한 득도를 20, 30대에 깨닫다니 주목 받는 건 자연스럽다. 청춘 특유의 이미지와 달리 인생을 초월한 듯 무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청년을 지칭한다.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는 투다. 승진도 출세도 원치 않는다. 기성세대 눈엔 확실히 별종이다.

청년은 미생이다. 묵묵히 삶을 이겨내며 완성해가는 게 인생사다. 나잇살의 값어치란 이처럼 무겁다. 그러자면 웅대한 계획과 희망찬 도전이 필수다. 당위론이자 현실론이다. 내일을 위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재도전은 청년에게 주어진 값진 특권이다. 지향은 하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다. 향상심의 발로다. 사회·경제적 욕구 발현이다. 모두들 이렇게 살아왔다. 기성세대의 경로는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 실현의 역사였다. 탐욕이면 문제지만 적정한 욕망은 성장의 원동력이다.

달관세대는 향상욕망과 결별한 일련의 청년인구다. 더 나은 내일을 원치 않는 청년 출현은 꽤 충격적이다. 긍정론도 있지만 적어도 인간 본능을 거스른 마찰 현상인 건 확실하다. 개별적인 욕망 추구가 전체적인 경제 발전을 낳는다는 경제 원론과도 배치된다. 무엇보다 욕망 거세의 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섭다. ‘취업→결혼→출산’의 연쇄적인 사회 진입이 끊길 우려다. 세대연결적인 바통 구조의 단절 사태다. 사회 지속의 불능 염려다. 청년 달관을 외면하거나 폄하하면 안 되는 근본 이유다.

청년 달관의 출발은 희망 상실 때문이다. 말이 좋아 달관이지 포장을 벗겨내면 절망과 동의어다. 그렇다면 왜 청년 절망일까. 그들이 주저앉는 건 더 뛰어야 하건만 뛸 수 없는 현실 족쇄 탓이다. 숨이 차도 더 뛰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건만 문제는 내디딜 한 움큼의 땅조차 없는 현실이다. 절망과 포기는 ‘원해서’가 아닌 ‘몰려서’가 원인이다. 기성세대의 판단 미스와 탐욕 선점이 그들을 벼랑으로 내몬 것이다. 내려놔야 할 판에 더 갖고자 사다리를 걷어차니 청년 추락은 당연지사다.

달관 운운은 아쉽다. 압박에 내몰린 불가피한 강제 출두로 보는 게 옳다. 걱정을 미룬 채 속 편한 쉬운 길을 택했다고 혀 찰 일은 아니다. 호도도 비난도 잘못됐다. 기성세대라면 힐책보다 반성할 일이다. 활로를 열어줘도 모자랄 판에 못난이 취급하면 안 된다. 달관이란 허울로 문제를 희석시키면 곤란하다. 잠깐의 붐 정도로 웃어넘기는 일도 금물이다. 달관 가면을 벗겨내고 그들의 소리 없는 신음과 비명에 귀 기울일 때다. 거세시켜 놓고 출산하지 않는다 한들 어불성설일 따름이다.

달관에 어울리는 정확한 신조어가 있다. 청년 득도의 속내 표현이다. ‘웃기다’와 ‘슬프다’를 합한 ‘웃프다’다. 웃기지만 서글픈, 복잡한 심경발로다. 달관만큼 인기다. 사전 등재마저 머지않은 듯하다. 그야말로 참으로 ‘웃픈’ 일이다. 미생이 어찌 도를 깨닫고, 웃기는 슬픔은 왜 퍼진다는 것인가. 정도 이탈과 균형 파괴의 사회구조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을 짓밟은 반인간적인 탐욕 모순을 꾸짖지 않을 수 없다. 청년의 꿈과 땀을 빼앗고선 그들에게 달관이라 평해본들 득 될 일은 없다. 달관은 틀렸다. 희망을 잃으면 내일은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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