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김웅서의 오션토크] 기후변화와 해저산

입력
2015.03.01 15:24
0 0

바다 속 8만km 길이 해저산맥 존재

'아라온호'로 굴곡 원인 밝혀내

연구 지원이 세계적 실적의 밑거름

만약 바닷물이 다 말라서 바다 밑바닥이 드러났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 해저 지형도 육지처럼 산, 언덕, 골짜기, 평원 등 있을 건 다 있다. 또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해저 중앙에 남북방향으로 남극해와 북극해까지 길게 늘어선 해저산맥이 있다. 잇달아 뻗어있는 산줄기를 뜻하는 한자 령(嶺)을 사용해 중앙해령이라 불러왔으나, 알기 쉽게 중앙해저산맥으로 고쳐 쓰는 것이 좋겠다. 해저산맥의 총 길이는 8만㎞에 달해, 지구 둘레를 2번 돌 수 있는 길이다. 해저산맥은 주변보다 2,500~3,000m 정도 높게 솟아있다. 백두산 높이만큼 되는 산들이 바다 속 한 가운데 줄줄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해저산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답을 이야기하기 전에 맨틀, 마그마, 대류 등 관련 용어를 먼저 살펴보자. 맨틀은 지구의 지각과 외핵 사이 부분이며, 마그마는 암석층이 높은 온도에 녹아 만들어진 유동성 물질이다. 맨틀은 지구 내부 핵의 뜨거운 열로 인해 대류를 한다. 대류는 유체에 열을 가했을 때 밀도 차이로 유체가 이동하여 열이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류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리그릇에 물을 넣고 후춧가루를 뿌린 다음 가열해 보자. 가열된 아래쪽 물은 팽창하면서 밀도가 작아져 위로 올라가고, 위쪽의 물은 대신 아래로 내려오면서 원모양으로 순환한다. 물의 움직임은 물속의 후춧가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지구의 맨틀 대류도 규모 차이만 있지 마찬가지 원리다. 맨틀이 지표 쪽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갈라지며, 이 틈으로 마그마가 올라와 해양지각이 새로 만들어진다. 마그마가 계속 올라와 높이 쌓이면 해저산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해저산맥의 정상에는 갈라져 생긴 골짜기라는 뜻의 열곡(裂谷)이 있다. V자 모양으로 생긴 이곳은 마그마가 분출하여 해양지각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새로 만들어진 해양지각은 양쪽으로 1년에 수 ㎝정도 속도로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이렇게 해양지각이 확장되며 마치 슬레이트 지붕처럼 높낮이가 다른 굴곡이 생긴 지형이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은 이런 지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답을 얻기 위해 연구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의 과학자가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명쾌한 답을 실었다. 주인공은 극지연구소의 박숭현 박사이다. 약 20년 전 북동태평양 심해저광물자원 탐사를 위해 거친 바다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던 기억이 난다.

박 박사는 2011년부터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이용해 남극 바다 속으로 음파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지형을 조사하였다. 반대 편 산에 부딪쳐 돌아오는 메아리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음파를 쏘아 해저에 부딪쳐 돌아오는 시간을 재서 바닷물 속에서 소리의 속도를 곱한 후 2로 나누면 바다 깊이를 알 수 있다. 관측 결과를 미국 하버드대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과 함께 분석하였더니, 남극 중앙해저산맥에 나타나는 굴곡이 빙하기와 간빙기 주기와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얻는 순간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이 간다. 유레카를 외치며 벌거벗고 목욕탕에서 뛰어나온 아르키메데스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간빙기보다 100m가량 낮아지는데 바닷물 양이 줄면, 중앙해저산맥이 받는 압력이 그만큼 낮아져 많은 양의 마그마가 흘러나와 높은 산맥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간빙기에는 해수면이 올라가 많아진 바닷물 압력 때문에 마그마가 적게 나오고, 낮은 산맥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무관할 것 같았던 빙하기와 간빙기가 바다 속의 해저산맥 지형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로써 1950년대 미국 과학자들이 대서양 한복판에서 중앙해저산맥을 발견한 지 반세기도 더 지나서야 굴곡이 왜 있는지 알려졌다.

이번 결과를 얻는데 아라온호의 역할도 컸다. 아라온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전재규 대원의 값진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다. 해양 연구에 필수적인 연구 장비 덕에 우리 과학자들이 날개 돋은 듯 세계적인 연구 실적을 내고 있다. 멍석을 깔면 하던 짓도 안한다지만, 과학자들은 멍석을 깔아주면 더 잘한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