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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위례가 신도시라고?

입력
2014.10.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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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의 발원지인 위례

신도시인가, 아파트촌인가

역사와 미래의 조화로운 만남돼야

위례신도시의 아파트 분양 경쟁률이 화제다. 평균 139:1, 최고 370:1의 경쟁을 벌였으니, 이 지역의 아파트 청약은 과열을 넘어 폭발적인 반응이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과 거여동, 성남시 창곡동, 하남시 학암동 등 3개시에 걸친 너른 땅에 총 4만6,000가구가 살 수 있는 위례신도시는 서울의 마지막 대형 주거지구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위례란 이름은 백제 시조인 온조가 처음으로 도읍을 연 바로 그 위례성에서 따왔다. 2,000여 년 전, 운명의 여인 소서노는 전 남편과 낳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과 재혼했다. 그러나 주몽의 전처 자식인 유리가 찾아오자, 두 친아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지금의 서울 근처에 정착하게 된다. 큰 아들인 비류는 미추홀에서, 작은 아들은 아리수의 남쪽 위례성에 나라를 열어 백제의 시조가 됐다. 그러나 미추홀과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미추홀을 인천으로, 위례를 경기도 직산 일대로 비정했다. 그 후 수많은 역사가 지리학자들이 위례를 삼각산의 동쪽, 중랑천 유역, 고양시 부근 등으로 추정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한강의 남쪽이라 했으니 하남시 춘궁동 일대나 이성산성까지 위례성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위례성이란 한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일컫는 보통 명사라는 주장도 있다. 위례의 어원은 ‘울’에서 온 것으로, ‘우리’로 확대되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학설이다. 그래서 최초에는 한강 북쪽에 하북 위례성을 뒀다가, 나중에 남쪽으로 옮겨와 하남 위례성이 됐다고 한다.

기록이 불확실한 고대사는 실제 조사된 유적과 유물에 의존하는 고고학적 방법이 더 정확한 사실을 밝혀주기도 한다. 수 십 년간의 발굴과 조사 연구를 통해 천호대교 남쪽의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왕궁으로 추정하는 대형 건물 유적과 함께, 도시를 이뤘던 흔적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근에 몽촌토성과 아차산성이 한강의 남과 북에 위치해 왕경인 풍납토성을 보호하는 방어체계를 이뤘다. 또한 잠실 석촌동의 초기 백제 무덤들 역시 위례성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풍납동 일대가 이른바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불구하고, 여기서 한참 떨어진 남한산성 아래에 위례신도시를 계획했으니, 또 하나의 추정 위례성을 만든 셈이다.

‘신도시’라는 말도 그렇다. 영어로는 ‘new town’이니, 몇 년 전 서울의 낙후된 지역들에 광풍을 일으켰던 ‘뉴타운’과 같은 말이다. 더 올라가 1970년대 ‘새마을’과도 유사한 어원이다. 원래 ‘new town’은 19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역사적 도시 개념이었다. 끝없는 인구 유입으로 과밀해진 런던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런던 교외 여러 곳에 작은 위성도시들을 건설하게 됐다. 이 위성도시들은 런던으로 출퇴근할 수 있도록 기차역을 중심으로 개발됐고, 자체적으로 중심 상가와 업무지역을 둬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계획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분당이나 일산 등이 진정한 ‘신도시’이며 ‘뉴타운’이다.

그러나 위례신도시는 자족적인 ‘신도시’나 ‘뉴타운’이 아니라, 서울 강남지역의 과밀하고 비싼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만으로 계획된 ‘침실도시(bed town)’일 뿐이다. 서울시내 곳곳에 만들어진 길음 뉴타운이나 왕십리 뉴타운 등도 원래의 개념과는 관계없는 거대 아파트 단지에 불과하다. 하기야 전원인 ‘가든’이 불고기집을 지칭하고, 시골별장인 ‘빌라’가 도심의 다세대주택을 의미하는 곳이 한국이니, 신도시든 뉴타운이든 이름을 붙이고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위례신도시라는 이름은 여전히 거북하다. 서울은 세 국가의 수도였다. 백제 역사 678년 가운데 493년 동안, 조선시대 600여 년,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도였다. 수도 서울의 역사는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한 기원전 18년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넘는 아득한 옛날에 세웠던 위례성이 21세기의 신도시라니? 역사와 어원을 따지는 이처럼 고루한 시각과는 전혀 다른 주장도 있다. ‘오래된 미래’라고나 할까, 한국적 신조어인 ‘위례신도시’란 얼마나 신선한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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