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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자기 앞을 스스로 가려라

입력
2014.09.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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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검·군 고위직의 일탈

자기제어가 어려운 ‘싱크홀’ 탓인가

나를 망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데

최근 드러난 두 유명인사의 망신스러운 행각을 따져보고 싶다. 둘 다 ‘불의의 사고’로 옷을 벗은 사람들이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자타가 창피한 ‘공연음란죄’, 신현돈 전 1군사령관은 어처구니가 없는 ‘공연추태죄’를 저질렀다. 누가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고 쫓아내려고 모의를 한 것도 아니었다.

둘 다 정부 직급체계상 장관급 바로 아래이지만 지명도나 주목도에서 일반 공직자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이 벼슬의 8부 능선에서 하산하는 것을 보면서 공직의 엄정함, 수신(修身/守身)의 어려움을 알게 된다.

아울러 요즘 현안인 ‘씽크홀’을 떠올렸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각종 기관의 우두머리, 후배들이 믿고 따라야 할 사람들 마음 속에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큰 씽크 홀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섬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사람들 속에 씽크홀이 있다, 그 씽크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김씨에게는 일과 후의 외롭고 주체할 수 없는 개인시간이 씽크홀이었던가 보다. 그는 왕복 7차선 도로변을 오가며 수 차례 음란행위를 하고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황당한 봉변’이라고 부인했다. 경찰에 적발되자 동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댔다는데, 그걸 외울 정도라면 ‘씽크홀의 시간’에 동생 이름으로 무언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외로웠던 것이다.

신씨는 대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긴장 속에 살아왔을까. 육군 대장을 길러내는 것은 본인에게 대단한 영광이지만 사회 전체로도 큰일이다. 그는 이른바 ‘노크 귀순’이라는 ‘안보 씽크홀’을 겪고도 살아남았던 사람이다. 그런 이가 대통령의 출국기간에 위수지역을 이탈하고 술에 떡이 돼 군화 한 짝은 안 신은 채 헌병에 업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았다. 이때 화장실 출입을 막는 헌병들에게 화가 난 대학교수가 신고를 함으로써 그는 두 달 여 만에 옷을 벗게 됐다. 이틀 후 자신의 관할인 22사단에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가 제대로 대처를 할 수 있었을까.

늘 기자들과 접촉하는 자리인 국방부 대변인을 거친 사람이 왜 그렇게 처신을 한 것일까. 다른 건 몰라도 언론 업무를 다루는 사람은 맡고 있는 일과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살피고 따져보는 시각과 자세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허리띠 한번 제대로 풀지 못하고 긴장 속에 살아온 그의 내면에 도사린 허무의 씽크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명량이라는 영화 덕분에 이순신 장군이 다시 조명되고 이순신 리더십이 회자되고 있다. 영화 자체는 대단치 않지만,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에 투철했던 충무공의 삶과 행적을 오늘에 되살려 널리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충무공도 종일 술에 취했다거나 여성과 동침한 사실이 그 자신의 기록인 난중일기에 나온다. 성웅도 인간이다. 다만 그런 일들이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아무런 다툼이나 말썽 없이 일어났고, 욕과 흠을 덮어서 지워 없앨 만큼 공이 크니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가 아니라 “낮말은 녹음기가 듣고 밤길은 카메라가 잡는다.” 남들이 두려워서라기보다 고위 공직자라면 스스로 자신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보여주었다. 누가 그들을 망쳤나? 자기 자신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보제(普濟) 스님은 “나 말고 누가 나를 괴롭히겠는가?”라고 했다. 그 말을 본떠 말하자면 “나 말고 누가 나를 망치겠는가?”

방패로 내 앞을 가리라거나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달라(이육사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말하지 말고, 스스로 호미를 쥐고 스스로 자기 앞을 잘 가리는 처신을 하라.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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